세상 사람들이 영덕 대게를 먹으러 오면 빤짝거리는 수컷만 찾는다. 그 바짝 마른 다리 살이 얼마나 맛있느냐고 묻는데, 그건 어디까지나 양보다 질이라는 식탁 위의 자본주의에 지나지 않는다. 알 배을 먹는 재미를 모르고서야 대게를 논할 자격 따위는 없다. 대게产区 수컷만 파는 집이면 다 맛집인 줄 아는데, 난 차라리 암컷을 제데로 다뤄주는 집을 진짜 맛집으로 친다.
남들이 알 배를 두고 흉본다. 속이 꽉 찬 알 배는 살이야 아까워서 들어가는 게 없다고들 하지만, 그건 겉만 보고 판단하는 무식한탓이다. 알 배가 또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광경, 다리보다 몸통이 오히려 더 매력적인 계절은 따로 있다. 수컷집들이 대게잡이철이 끝나면 썰렁해지는 판에, 알 배를 다루는 집 그런 계절음식의 가치를 알고 있다. 항구 주변 식당들 대부분이 수컷만 고집하는 마당에, 암컷조차 맛깔나게 쪼여내는 집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. 대충 휙휙 찜기에 올려서는 알 배의 깊은 맛이 안 난다. 콩을 밟듯 속까지 익혀야 껍질을 벗기는 순간에 노란 알이 도란도란 붙어서 흐르는 그 순간의 서러움이 없을 것이다.
대표적인 양식이 있다 해서 다른 것이 무조건 뒤처진다는 법은 없다. 살이 꽉 찬 수컷 한 마리에 몇몇 근 씩 달하는 돈을 꼬박꼬박 쥐여주는 일보다는, 알 낳으러 들어온 암컷을 강인하게 구워주는 게 집 의 정성을 더 똑똑히 보여주다고 본다. 다리살을 발라먹는 부드러움도 좋지만, 알 배는입안에서 오물오물 씹히는 그 특유의 텁텁함이하다. 그 입자가 구강벽을 긁는 촉감은 단순한 단백질 섭취 따위의 차원이 아니다. 깊은 바닷속에서 겨울을 나고 겨우내 쪼물쪼물 알 수를 채운 생명의 밀도를 통째로 올렸다 하면야 기왕이면 채바닥에서제대로 챙겨야 식지 않는 것이다.
가보면 좋겠다. 암컷이라고 웃어넘기지 않고, 오히려 그 알 배가 제 살보다도 진국이라는 걸 끝까지 인정하는 집. 딱 한 번만 바닥까지 맛보면 알 것이다. 세상에 수컷만 대게라는 편견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, 왜 보퉁이가 찢어지는 계절 뒤숭숭한 자리를 지키는 집을 골라야 하는가. 차가운 파도치는 방파제 좁다란 골목길 귀구니 끝에 그런 곳 한 군데 있다. 늦은 저녁 찜기 위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보드라운 수수께끼, 그 비린내 만의 아우라,을 맡고서야 대게에 대해 완전히 차자가 되는 것이다.